2017년 8월 작성




얼마 전 발간된 소설가 황석영의 자전은 1986-89년에 민족적 사명감으로 방북을 한 후 귀국하여 오 년 간 옥살이를 했던 그의 맹랑하기 짝이 없는 우여곡절로 시작된다. 그는 망명기 동안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제목의 방북기를 펴내는데 이러한 행보는 당시 문화와 예술이 세계, 혹은 정치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위 분단 1세대라 칭할 수 있을 그들에게 북한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떤 돌아가야 할 곳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한 기억을 일깨움으로써 유토피아를 더듬는 일이야말로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치였을 것이다. 이는 마당극이나 민속극 등의 당시 예술 운동들이 왜 한민족의 얼과 같은, 이제는 맥빠진 정념들에 매진해 왔는지 또한 보여준다. 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위적인 개념에 불과한지를 비웃는 우리들과 달리 그때 이 단어는 가상임과 동시에 묵직한 실재였다. 그것은 그리 머지않은 공동의 기억 속에 민주 운동의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반미 운동의 가늠자가 되기도 하는, 그야말로 아직 도래하지 못한 미지의 코리아가 존재한다는 암시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30년을 건너뛰어 우리는 격변! 미지로부터 코레아를 보게 된다. 전시는 그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명랑함을 담지한다. 격변!이라는 뻔뻔스러운 작명을 통해 여전히 북한으로부터 유토피아 적인 미래를 연역해 낼 수 있다는 연극적인 태도를 채택할 때, 분단 1세대와 벌어질 만큼 벌어진 간극은 꼬리를 밟혀 버린다. 그것은 가장 경험적인 차원에서 세계의 모순점을 표시하던 저 북쪽이 30년 사이 이 전과 같은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음을 상기 시킨다. 그러한 역사적 기억들이 대거 사라져 버린 것은 단순한 세대교체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역사라는 단어 자체의 위기와 연관 있을 것이다. 전시는 오늘날의 짜게 식어버린 북한이 어떻게 현상하는지를 탐구하는 동시에 오늘날은 세계의 모순이 어디에서 모습을 드러내는지 찾아 헤맨다.


두 시간대 간의 상이한 간극은 황석영의 유토피아와 정반대 편에서 가장 무정부주의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차지량의 작업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그는 정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유사 SF적인 페스티벌을 기획하는데 정전 60주년에 진행되었던 이 작업은 기념비적인 시간에 대한 냉소를 보인다. 이미 지나간 기억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소급하고자 했던 분단 1세대의 예술 운동들은 Rage against the machine과 서태지와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버무려진 북한의 짤들의 현란함에 치여 처참하게 와해된다. 이것은 잃어버린 고향으로서의 북한과 같은 서사들이 생명력을 잃어버렸을 때 등장한 새로운 유토피아적 전략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기억의 소급 작용을 통해 역사를 미지의 페이지로 넘기고자 하던 그들의 시도와 반대로 여기에서는 그런 열망 자체에 대한 의심이 더 짙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러한 역사 적 기억의 반복이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를 성토하며 그러한 전체주의적인 기억하기 행위를 패러디한다. 영화 <코리아>에서부터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광주 비엔날레 작업에 이르기까지, 남북의 평화적인 대화에 대한 클리셰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탁구대는 이 작업의 냉기를 더욱더 가속화 시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강압적인 역사적 기억의 소각일까? 김해진의 작업을 통해 유추하건 대 그러한 역사적 기억은 우리가 소각하기도 전에 이미 영도에 가까워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파주라는 전시장의 지리적 맥락을 이용해서 북한으로부터 발신되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잡으려고 시도한다. 이 작업은 한국 근현대사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로 작동했던 분단이 지금은 어떠한 맥락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은밀하게 보여준다. 북한은 공동의 기억이라는 시야망을 완전히 초과하여 버려서 이제는 낯선 억양에 격양된 말투의 아나운서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뉴스를 전하는 것을 볼 때의 문화적 충격만이 남아 버렸다. 이러한 낯선 타자로서의 북한에 대한 경탄은 DMZ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벌거벗은 심리전의 첨병, 삐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남북 모두 삐라에 미인계를 동원했다는 깨알 같은 정보로 홍보되는 이 전시는, DMZ에 대한 기억까지도 냉전 시기의 문화적 양상에 대한 아카이브적 기억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기념비적인 기억, 즉 역사를 제시하던 공간이었던 박물관이 모두 미시적이고 문화적인 기억들을 탐닉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기때문이다. 이때, 과연 역사적 기억은 너무 과잉이어서 문제인 것일까? 오히려 그것이 말소되어서 미지의 공간, 북쪽이 담지하던 유토피아적인 의의를 눈 씻고도 찾을 수 없는 게 문제인 건 아닐까?


조선중앙방송과 삐라와 우악스러운 프로파간다만이 키치로 남아 구글 이미지의 폐쇄 회로를 맴돌고 있는 이 서글픈 북쪽은 부재하면서 현존한다는 점에서 유령과도 같은 모습을 띤다. 기억의 망에서 소거된 그것은 이 전에 갖던 정치적 의미를 박탈당하여 이전보다 더욱 심화된 미지의 영역에 머물지만 동시에 낯선 것들을 퇴폐적으로 차용하는 힙스터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옥인콜렉티브는 이보다 더 흥미로운 북한의 유령성을 제시한다. 바로 남한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는 저 잉여분의 무엇이다. 법정에 선 P군은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가변적인 법인지를 시연하게 된다. P군의 죄목 자체는 변함없음에도 그의 옷차림과 행동거지가 바뀌자 그를 감면해주는 이 법은 공평을 외치는 남한 민주주의 자체를 기각하며 작동하는 듯 보인다. 이는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억압을 승인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중핵과도 같다. 그들이 의지대로 늘리고 줄일 수 있는 저 칼을 휘두를 때, 그 폭력의 근거인 저 북쪽은 부재하나 동시에 현존하게 된다. 북한을 통해 세계의 부정성, 모순을 상영하는 마지막 장소가 더 이상 유토피아적인 투쟁의 장이 아닌 국가 보안법의 법정이라는 점은 분명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전세계적 승리로 종결지은 듯한 오늘날의 역사적 단계가 여전히 극복해야 할 모순의 세계임을 반증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북한의 유령성은 새롭게 겨냥해야 할 비판적 표적임이 틀림없다.


방북 전 오에 겐자부로를 만난 황석영에게, 겐자부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듯 서사가 많다는 나라에 살고 있는 당신이 부럽다.” 우리는 여전히 서사가 많은 나라에 살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며 혹은 전적으로 그렇기도 할 테다. 역사적 기억들은 그것이 위치하던 단단한 맥락에서 풀려나 대기로 흩어져버렸기에 그런 서사는 더 이상 기억 불가능하다. 하지만 또한 그것은 부정적인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다. 공산주의자는 어디에도 없으나 반북주의와 주사파 논란과 빨갱이 프레임으로 돌아오는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 서사의 건재를 증명한다. 이것이 과연 미지의 코리아를 소환해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결정된 문제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여기가 바로 오늘날의 시공간에 새롭게 열린 미학적 계급투쟁의 장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은 ⟪격변! 미지로부터 코리아⟫ 도록에 게재 되었습니다.